그날은 전장야협의 이사회가 있는 날이었다. 회의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학인, 푸름, 그리고 초현과 여러 활동가들이 모여 속닥이고 있었다. 회의장에 나와보니 늘 북적이던 유리빌딩의 5층이 한산했다. 모두가 혜화동 종탑 위와 아래에 모여있다는 걸 몇백 개가 쌓인 텔레그램 메세지로 알 수 있었다. 그날은 초현과 내일 봐, 라는 인사를 나누는 것은 변치 않았지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장장 2주가 넘게 걸렸다.
전국탈시설연대의 서울지부 대표이자 소중한 동료인 초현에게 고공농성 경험에 대해 물어봤다.
Q. 고공농성에 올라가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될까요?
초현 : 한국천주교가 175개의 거주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장애인은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특히 발달장애인을 비인간동물것과 비교해서 자립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올라갔고 이를 사과 받고 한국천주교가 탈시설의 연대해줄것을 요구하기 위해서 올라갔다.
Q. 고공에서 15일을 꼬박 계셨어요. 고공농성 올라간 순간부터 생활한 동안의 일상은 어떠셨어요?
초현 : 고공에서의 생활은 딱히 없다. 고공에서는 진짜 할게 없다. 인터뷰 요청오면 인터뷰의 응하고 연대문화제를 관람하고 이렇게 하루를 보냈다.
머리를 감지 못해 질끈 머리를 묶고 머리띠로 트레이드 마크이던 앞머리마저 바짝 넘긴 초현이 혜화동종탑에서 아래에 있는 동지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Q. 종탑에서 내려간 직후부터 내려온 현재까지 순간들에 대한 회상과 달라진 몸과 마음의 변화, 앞으로의 각오는 어떻게 되시나요?
초현 : 고공에서 내려와서 바로 경찰에 의해 연행이 되었고 유치장에 입감이 되었다. 그 순간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정신없었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운동을 그만 둘 생각은 없다. 더 힘차게 투쟁해서 우리의 당연한 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할 것이다.
수갑이 채워진 채 내려와 핸드폰과 모든 전자기기를 압수당한 고공농성 3인에게 경찰은 동지들과 인사할 틈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구급차가 아닌 승합차의 30초간 열린 문에서 도망칠까 뒷자리에 앉힌 동지들이 보이지도 않았다.
올라간 첫 날부터 경찰들의 무력 진압에 저항하고, 내려오자마자 경찰에게 압류당했지만, 초현의 탈시설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꺾인 적 없고, 늘 카메라를 바라보며 반짝이게 웃는다. 바쁜 일정에서도 초현은 결의를 남기고 북미로 떠났고, 그의 탈시설과 장애인권리에 대한 열망은 줄어들지 않을 예정이다.
고공에서 내려와 다시 함께 투쟁에 나섰던 ‘오세훈 시장님 대화합시다 지하철 탑니다’ 1차 행동